민영이는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횡설수설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현욱이 갑자기 민영이를 와락 안더니 두 손을 얼굴을 잡더니 입을 맞췄다.
민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욱이가 거칠게 민영이의 입술을 빨았다. 민영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을 감고 두 팔로 현욱이를 감쌌다. 그러자 현욱이가 흠칫하더니 입술을 뗐다. 그리고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민영이를 부서질 듯 꼭 안았다.
민영이는 현욱이의 미안하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민영이는 현욱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길거리 키스라니... 민영이는 왠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다.
그리고 현욱이가 아직 내 것이라는 것에 안도감도 들었다.
둘은 그렇게 버스가 올 때까지 안고 있었다.
둘은 민영의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민영이와 현욱이는 나란히 그네에 앉았다. 민영이 고개를 숙이고 발로 모래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현욱은 가만히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민영이는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현욱이가 왜 이렇게 무게를 잡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침묵이 어색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면 그걸로 됐지. 도대체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결국 민영이는 눈치를 보며 침묵을 깼다.
“오빠, 오늘 나 때문에 알바 일찍 끝낸 거지? 괜찮아요?”
“...... 괜찮아.”
현욱은 마음을 굳힌 듯 이어서 말을 했다.
“나 편의점 알바 그만두고, 과외할 거야. 어제 밤에 여기저기 글도 올리고 좀 알아봤고, 오늘 오전 일찍 과외 대행사에 면접도 봤어. 다음 주에 시강 3명이나 잡았어. 이제 나 돈부터 벌 꺼야.”
“잘됐어요. 축하해요. 내가 축하 선물해줄게요. 뭐 받고 싶어요? 옷 사줄까?”
현욱이 모래에 비벼 담배를 껐다. 그리고 앞을 보며 말했다.
“민영아. 그러지 마.”
“네?”
“그렇게 잘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나한테 밥 같은 거 안 사줘도 되고, 선물 같은 것도 안 줘도 돼. 괜찮아.
나 안 떠날게. 나 그냥 계속 네 곁에 있을게. 너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웃으면 돼.”
민영이는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발을 멈췄다.
현욱이는 밤하늘을 보며 덤덤히 말했다.
“어제 너랑 헤어지고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화가 많이 났었지. 내 지인들을 무시하는 너, 나를 무시하는 너, 그냥 심심해서 날 만나주는 그런 너란 여자에게 어디까지 내가 자존심을 버릴 수 있을까 생각했어.
사실 나 엄청 자존심 강한 놈이거든. 그래서 고3 때 부모님 이혼하고, 입학금, 등록금 부족했을 때도. 친척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서 입학한 대학 다 취소하고, 혼자 돈 벌고, 공부해서 장학금과 모은 돈으로 여기까지 왔어. 이건 창수도 자세히 몰라.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 나 무시당하고 사는 거 정말 싫거든.
그런데 지금 너에게는 나 자존심이 없더라. 자존심 내세우지 않고 널 만나려고 해. 네가 나보고 꺼지라고 할 때까지 난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오늘도 넌 심심해서 나에게 온 거지만 상관없어.
너 얼굴 보니까 다 무너졌어.
내가 널 정말 많이 좋아하더라.
예뻐서 널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오늘 아이처럼 뭐라도 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제 알겠더라. 나는 민영이, 너, 우리 예쁜이의 모든 것을 그저 좋아라 하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더 노력할게. 걱정하지 마."
말을 끝낸 현욱이가 고개를 돌려 민영이를 바라보았다. 현욱이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민영이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숙여졌다. 머리카락이 민영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민영이는 지금 이 순간 현욱에게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끌다가는 나쁜 여자 코스프레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인지.. 아닌지... 자기도 현욱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예쁜아, 나는 네가 나한테 억지로 잘해주지 말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툭툭 거려도 되고, 내숭 없이 털털하게 굴어도 되고. 그냥 말 그대로 편하게 좋아지면 좋겠어. 언젠가는 되겠지?”
민영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리며 말했다.
“오늘 한 것들 다 오빠가 좋아서 그런 건데......”
민영이는 머릿속으로 ‘뭐지? 나 지금 말 한 건가?’ 싶었다. 말해 놓고도 당황스러웠다.
현욱이 민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현욱이 물었다.
“응? 뭐라고?”
민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좋아한다고요.’라고 크게 말했다.
왠지는 모르지만, 한 번 좋아한다고 소리 내어 말하고 나니 정말 현욱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도 좋았으니까 만나고 입도 맞췄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민영이는 현욱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온몸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진짜 이 사람을 좋아하고, 진짜 이 사람의 여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현욱이가 일어나 민영이의 그네 앞에 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민영이의 머리를 쓸어 올리고, 턱을 살짝 잡고 고개를 들었다. 민영이와 현욱이의 눈이 마주쳤다.
“정말? 날 좋아해?”
현욱의 민영의 눈을 보며 물었다. 현욱이의 눈이 반짝였다.
민영이는 정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욱이는 웃으며 민영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민영이는 현욱의 눈빛에 새삼스레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 몸에서 땀이 났다.
현욱이가 조심스레 천천히 민영이에게 다가갔다. 민영이가 눈을 감았다. 현욱이가 민영이에게 입을 맞췄다. 민영이가 다치지 않게,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며 아주 살며시 입술을 대고, 그렇게 가만히 한참을 입술만 대고 있었다.
민영이는 눈을 꼭 감았다. 이제 진짜 한 남자의 여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민영이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
“왔니? 늦었네.”
엄마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네, 지은이랑 만나느라고요.”
“그래, 뭐 먹을래?”
“아뇨.”
민영은 바로 방으로 들어와 화장대에 앉았다.
뺨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숨이 가빴다.
민영은 두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에서 현욱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민영아 과일 먹어!”
거실에서 언니가 소리쳤다. 민영은 안 먹는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평소와 다르게 방안에만 있으면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부터 하고!”
민영은 소리치고는 서랍에서 갈아입을 속옷을 꺼내 욕실로 갔다.
속옷이 땀으로 끈끈하게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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