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맥도날드 매장 창가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현욱은 수트 재킷을 벗어 옆 의자에 걸쳐 놓고, 셔츠 소매를 반쯤 걷어올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민영이도 코트와 부케를 옆 의자에 올려놓고, 테이블 아래로 하이힐을 벗고, 스타킹을 신은 맨발을 꼼지락 거리며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다 먹은 햄버거 껍질이 구겨져 있었고, 감자튀김 몇 조각과 김 빠진 콜라만 남아 있었다.


“정말 오랜만인데, 빅맥이라서 좀 웃긴다. 어쩜 주변에 식당이 이렇게 없지?”


현욱이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민영이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식은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으며 말했다.


“그러게, 좀 더 낭만적이면 좋았을 텐데. 사는 게 영화 같지 않네. 그런데 진짜 맛있다. 오빠 말대로 부케 받는다고 긴장해서 아침부터 쫄쫄 굶었거든. 식장에서도 아무것도 안 넘어가더라구.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더욱 맛있다.”


현욱이 피식 웃었다.


“만족스러워해서 다행이야. 솔직히 결혼식 끝나면, 너랑 조용한 커피숍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예전에는 못 가봤던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가야지 하고 말이야. 아니면 결혼식 열린 호텔 커피숍으로 갈까 생각도 했었거든.

이렇게 맥도날드 올 줄은 몰랐어. 편하고 맛있어서 좋긴 한데... 이상하게 괜히 미안해지는 걸, 다음엔 좀 더 좋은 데 가자.”


“다음?”


민영이의 물음에, 둘이 눈이 마주쳤다. 민영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콜라를 마셨다. 현욱이도 웃으며 콜라를 마셨다. 그런데 현욱이 콜라가 비어 쭉쭉 소리가 났다. 현욱이가 얼음이 든 잔을 흔들며 일어났다.


“콜라 한 잔 더 마셔야겠다. 너도 마실래?”


“아니, 난 괜찮아.”


“그래? 그럼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이스크림? 초코맛?”


“그래. 초코맛으로 가져올게.”


현욱이 일어나며 느슨해진 타이를 풀러 재킷 위에 툭 던졌다. 손목에 시계가 반짝였다. 민영이는 카운터로 향하는 현욱의 뒷모습을 보았다. 다림질이 잘 된 셔츠와 바지 그리고 깨끗한 구두 때문인지 뒷모습이 훤칠하니 어른스러웠다.


현욱은 새로 주문한 콜라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자리로 왔다. 민영이가 두 팔을 테이블에 기대고 창 밖을 보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는 맨발이 귀여웠다.


현욱은 그렇게 잠시 민영이를 바라보았다.


잡지책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윤기 나는 단발머리가 출렁이더니 민영이가 고개를 돌려 현욱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현욱이가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늦었지만 회계사 합격한 것 축하해.”


“고마워, 그렇게 난리 치며 공부했는데 붙어야지. 머리가 나쁘니 오래 걸려서 창피해.”


“오래 걸리긴. 원래 그 정도 걸리던데 뭐.”


“오빠는 선생님이라면서? 잘 나간다고 하던데.”


“선생님은 무슨..... 강사야. 네 덕에 과외 시작했던 것이 아예 업이 됐어. 잘 된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다.”


“잘 나가는 고등부 강사라며. 논술로 완전 유명해졌다고 바쁘다고 지은이가 그러던데.”


“지은이가 창수한테 점점 물들어서 과장이 심해. 잘 나가긴. 고등부는 원래 다 바빠.”


“그래도 난 머리 아파서 이제 고딩 때 공부는 못하겠더라. 아무튼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뭐, 적성이랑은 맞는 것 같아. 그래 정말 다행이지.... 너도 좋아 보여서 정말 좋다.”


민영이가 할 말이 없어서 웃었다. 현욱이는 웃지도 않고 민영이를 바라보았다. 민영이는 왠지 부담스러워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창문으로 현욱이가 계속 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비췄다. 왠지 모르게 민영이의 두 볼이 발그레 졌다.


“벌써 4시네. 음......”


현욱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민영이도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봤다.


“어머, 벌써 그렇구나.... 차 막히기 전에 일어나야겠어.”


“많이 바쁘지 않으면 우리 어디 가서 맥주나 한잔 할까?”


민영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 바람을 넣어 볼을 빵빵하게 만들며 잠시 생각했다. 민영이가 말했다.


“차도 있으니까. 술은 안 마시는 게 좋겠어.”


“그래......”


또 콜라를 한 모금 마신 현욱이가 말했다.


“창수가 네가 부케 받는다고 할 때, 정말 놀랐거든. 그리고 너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생각 많이 했어.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서.”


“그래......”


“그동안 잘 지낸 것 같아 보기 좋다.”


“오빠도 보기 좋아. 깔창을 깐 거야? 키가 큰 거야?”


“하하하. 운동을 진짜 많이 했어. 그러다 보니 허리도 펴지고, 어깨도 넓어져서 키가 2센티는 커진 효과가 나더라고. 그리고 옷을 몸에 잘 맞게 입어서 더 좋아 보일 거야. 강사니까 아무래도 보이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잖아. 그래서 단골 집 하나 잡아서 옷을 몸에 맞게 수선해서 입어. 비싼 데는 아니지만 솜씨가 좋아서 싼 거 가서 수선해서 입으면 비싼 옷 입은 효과가 나더라고. 괜찮지?”


현욱이 오버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어색한 웃음은 금세 그쳤다. 현욱이는 민영이를 바라보며, 콜라를 마셨다가 입술을 깨물며 달싹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못하는 모습이었다.


민영이는 그런 현욱을 보고 결심한 듯 크게 숨을 들이내쉬었다. 그리고 연습했던 말을 빠르게 뱉었다.


“난 잘 지냈어. 그리고 미안해. 그때 그렇게 연락 끊고, 이별한 거.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영영 못 헤어질 것 같았어. 그리고 안 헤어지면 시험에 또 떨어질 것 같았고. 그때는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빠가 힘들었을 것 같아. 미안해. 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좀 더 배려해주면서 이별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현욱이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작게 여러 번 끄덕였다.


콜라를 마셨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발을 쭉 뻗었다.


괜히 창 밖을 한 번 보다가 팔짱을 꼈다가, 맨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민영이를 보고 말했다.


“우리 진짜 서로 좋았지?”


민영이도 현욱이를 보았다.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짜로 좋았지. 좋아했었지.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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