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이는 눈을 뜨고 핸드폰을 봤다.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이었다. 민영이는 울리지도 않은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쭉 폈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부모님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선식 갈아 놨다. 밥 먹어도 되고.”
엄마가 말했다.
“그냥 선식 한잔 마시고 지하에서 땀 좀 빼고 출근할 거예요.”
민영이는 식탁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선식을 쭉 들이켰다.
“너 반지 꼈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민영이가 쭉 마시던 선식을 갑자기 천천히 씹어 먹기 시작했다. 입안에 모든 것을 삼킨 후에 겨우 민영이가 대답을 했다.
“응, 예뻐요?”
“웬 반지야?”
아빠가 젓가락으로 김치를 뒤적이며 무심한 척 말씀하셨다. 엄마는 수저를 내려놓고 민영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민영이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누가 줬어요.”
“누가? 너 남자 있어? 설마 여행도 남자랑 간 거야?”
“아니야. 미쳤어! 그런 거 아니고. 동호회 사람들 여럿이서 간 거예요. 근데 그중에 누가 나 좋다면서 줬어.”
민영이는 되는대로 거짓말을 했다.
“좀 보자.”
엄마가 민영이 손을 잡아채서 반지를 유심히 봤다.
“이거 비싼 건데.. 뭐하는 사람이야? 몇 살이고? 너는 어때? 일단 한 번 데려와봐.”
“아 몰라요. 반지가 이뻐서 일단 받긴 했는데. 아직 뭐 결정된 거 없어요. 다 정해지면 그때 데려올게요.”
민영이는 엄마가 잡고 있는 손을 홱 빼서 도망치듯 방에 들어왔다.
등 뒤에서 아빠가 엄마한테 뭐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민영이는 침대에 앉았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차피 조만간 현욱 오빠를 집에 데려올 거다. 여행 간 것 때문에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잘한 건지도 모르겠고,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민영이는 갑자기 현욱이가 너무 그리워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오빠.”
“응, 잘 잤어?”
현욱은 자고 있던 중인지 웅얼거리며 말했다.
“오빠. 엄마 아빠한테 반지 들켰어. 그래서 남자친구 있다고 말했어.”
“응, 잘 했어... 뭐라고?”
현욱이 놀란 듯 되물었다. 현욱이가 너무 화들짝 놀라자 민영이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왜? 애인 있다고 말한 거 싫어?”
“아니... 싫기는 좋지. 그냥 드디어 말했다니까 좀 놀라서. 몇 년 동안 만날 때도 숨기더니, 지금은 바로 말해서 놀라서 그렇지.... 부모님은 뭐라셔?”
“뭐... 사실 제대로 말 못했어. 여행 간 것은 숨겨야 할 것 아냐. 그래서 거짓말 섞어서 말하느라 자세히 말한 건 아냐. 그냥 나 좋다는 남자 있다는 정도만 말했어.”
“휴~ 잘했어. 그래 천천히 말해. 부모님 놀라실 텐데. 암튼 나야 좋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비밀로 숨기는 건 나도 싫어.”
현욱의 변명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영이는 나쁜 생각을 버리려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오빠도 출근 준비 해. 난 운동하고 출근할 거야. 이따 퇴근하고 오빠 학원 앞에 갈 테니까 같이 저녁 먹자.”
“그래. 좋지.”
“그럼 이따 봐. 끊을게.”
“응”
“오빠, 사랑해”
“나도.”
“헤헤”
민영이가 전화를 끊었다. 빙긋 웃음이 나왔다. 민영이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행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날짜 잡고 나서, 형식적으로 프러포즈 이벤트 하는 것이 흔하다. 그러나 민영이는 그런 프러포즈는 너무 싫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처럼 진짜 두근거리며 프러포즈하는 것을 꿈꿨던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지 못한 상황에서 반지와 함께 청혼을 받고, 그리고 결혼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민영이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현욱이가 해준 것이다.
민영이는 반지에 입을 맞췄다.
민영이는 현욱이와 약혼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제 부모님께 잘 말씀드리고 결혼 준비할 단계였다. 민영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민영이는 반지를 낀 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었다. 김부장님, 이회계사님, 승민씨와 넷이 사무실 앞 식당에 갔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은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민영이가 무심한 척 식탁에 휴지를 깔고 수저를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부장님이 반지를 발견했다.
“어! 민영회계사님 반지 아니야? 왠 반지야? 이거 커플링 아니야? 이거 뭐야? 대박.”
김부장님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민영이는 쑥스러운 척 반지 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남자친구가 준거예요. 프러포즈 반지예요.”
“어머머 연애 안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새 애인이 생겼어? 어디서 남자가 나왔어? 말 좀 해봐. 어머나 반지 반짝이는 거봐.”
김부장님이 아줌마처럼 손뼉 치며 말했다.
“학교 동기예요. 근데 삼수생이라 나이는 나보다 많은 오빠. 사실 대학생 때 사귀던 첫사랑이에요. 헤헤. 얼마 전에 친구 결혼식에서 만나서 다시 사귀기 시작했어요.”
“어머나 그래서 갑자기 휴가 내고 여행 다녀온 거예요?”
승민씨가 눈썹을 삐쭉 올리며 말했다. 민영이는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얼른 표정을 관리하며 변명했다.
“아니에요. 여행은 남자친구랑 간 게 아니고 나 활동하는 동아리 모임에서 다녀온 거예요.”
“어머머 영화 같다 헤어진 첫사랑이랑 다시 사랑에 빠지다니.”
“네. 서로 첫사랑이에요.”
“멋지다. 그치? 민영회계사님은 연애도 참 영화 같네요. 뭐라고 하면서 반지 줬어요?”
“뭐... 사랑한다고 그때 못했던 거 더 잘해주겠다고 하면서 줬지요. 호호.”
민영이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이야. 좋겠다. 좋구나. 축하해요.”
김부장님의 오버스런 축하해 민영이가 입이 헤벌쭉해서 호호호 하고 웃었다.
“지금 직업이 뭔데요?”
승민씨가 물었다.
“지금 고등부 사탐, 논술 강사예요. 대치동에서 재수종합반 강의하고 있어요.”
“어머 고등부 강사? 엄청 똑똑하겠다. 멋지다.”
“학원 강사요? 학원 강사는 늦게 끝나고, 주말 근무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힘들 텐데.”
승민씨가 삐죽거리며 말했다. 민영이가 승민씨가 자꾸 딴지를 거는 것이 기분이 나빴지만, 웃으면서 대꾸했다.
“교육 쪽이 잘 맞고 능력이 좋으니까. 자꾸 학생들이 찾아오는 걸 어떡해요. 결국 고민하다가 사교육으로 넘어간 거지요. 요즘엔 애들이 학교 가서 졸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세상이라 따르는 학생들이 엄청 많아서 힘들어하네요.”
김부장님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말을 했다.
“그래요. 축하해요. 대표님이 좋아하시겠다. 막내딸만 시집가면 된다고 노래를 부르시는데 이제 멋진 남자 데려왔으니 얼마나 좋으시겠어.”
“조만간 말씀드릴 건데 아직은 말 못했어요. 사귄지 얼마 안 되어서 타이밍을 못 잡았거든요. 조만간 정식으로 말씀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김부장님도 그렇고 모두들 당분간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민영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알았어요. 걱정마요.”
김 부장님이 대답하자. 조용하던 이 회계사님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우리 이제 밥 시킬까요? 배고파요.”
민영이가 당황해하며 메뉴판을 꺼냈다.
“네 그래요. 오늘은 입조심 부탁하는 의미로 제가 쏠게요. 뭐 시킬까요?”
“어머 좋지. 그럼 내가 대표로 주문할게.”
김부장님이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이 달려와 주문을 받아갔다. 김부장님이 이회계사님 얼굴을 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이회계사님 표정이 왜 그래요?”
“그냥... 민영 회계사님 결혼한다니까 아까워서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게... 내 입장이 이래서 그런 것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무조건 여자가 아깝거든. 좋은 분 일거고 행복할 거고 축하하는데. 내가 갔다 와서 그런지. 내 동생 같아서 그런가. 보기 좋으면서도 괜히 걱정도 되고 그래. 후후 이게 진짜 아줌마의 마음인가 봐요.”
“호호호 하긴 내 친구들도 그런 말 많이 했어요. 결혼하지 말고 지금처럼 혼자 살라고요. 하지만 혼자 늙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낭만적이야. 첫사랑이랑 다시 재회하고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런 사랑이라면 고생 하나도 안 하고 행복하게 살 거예요. 난 그냥 부럽네요. 호호.”
“맞아요.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싶어서 부러워요. 하하하. 연애하고, 청혼받고 좋을 때지요. 세상이 예뻐 보일 거야.”
나이 든 두 명의 싱글 여자가 갑자기 옛 추억에 잠겼다.
민영이는 순간 저렇게 늙지 않고 내 곁에 현욱 오빠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6시 땡 하고 퇴근 시간이 되자, 두더지 게임의 인형처럼 민영이가 벌떡 일어났다.
“먼저 가겠습니다. 퇴근들 하세요.”
큰 소리로 주변에 인사하며, 민영이가 문가로 경쾌하기 나갔다. 그런데 아빠가 대표실 문을 열면서 민영이를 불렀다.
“주민영. 잠깐 들어와.”
민영이가 시계를 보고 인상을 살짝 썼다. 현욱 오빠가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영이는 고분고분 아빠 사무실에 들어갔다.
“너 남자 만나러 가냐?”
“......”
민영이는 아빠의 돌직구에 대답하지 못했다.
“언제 데려올 거야?”
“조만간요.”
“뭐 하는 사람이냐?”
“학원 강사예요.”
“강사?”
아빠는 팔짱을 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한 긴장감에 민영이가 주절주절 현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 고등부 강사요. 대치동에 있어요. 재수반인데 사탐 논술강사예요. 아빠도 학원 이름 들으면 아실 거예요. 큰 학원이에요.
그리고 같은 학교 동기예요. 친구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최근에 연락하게 됐어요. 학생 때도 장학금 한번 안 놓치고 혼자 벌어 졸업까지 했고요. 지금도 능력 좋아요. 연봉도 괜찮구요.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바빠서 지금은 인사시키기가 좀 그래요. 우리도 만난 지 얼마 안됐구요. 기다렸다가 좀 한가해지면 그때 집에 데려오려고 생각 중이었어요. 키도 크고 잘 생겼구요. 사람이 성실해요. 착하구요. 거짓말도 안 하고요.”
“부모님은 뭐 하시고? 형제는?”
“외 아들이고...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잘 몰라요. 오빠가 신경 쓸 거 없데요. 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하셨다가 망하긴 했는데. 그래도 형편이 막 어렵거나...”
“됐다. 알았으니 나가봐.”
아빠가 민영이의 말을 잘랐다. 민영이는 괜히 섭섭했다. 현욱에 대해 좀 더 설명하고 싶었다.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사람인 것을 말해야 했다. 하지만 아빠가 나가라고 하는데 더 말을 건넬 용기가 없었다. 민영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일어났다.
현욱의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 현욱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예쁜이 기다리다가. 방금 학부모가 피자랑 간식 엄청 사 와서, 같이 먹어버렸어. 미안해. 오늘은 그냥 집에 먼저 가는 게 어때? 나 오늘 12시까지 일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여행 다녀와서 예쁜이도 피곤할 텐데.”
“아니야. 나 학원 앞 커피숍에서 기다릴게. 퇴근하고 봐요.”
“12시까지 기다리기 힘들 텐데.”
“괜찮아요. 잠깐이라도 보고 싶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해요.”
“12시에 만나도 정말 잠깐 밖에 못 볼 텐데... 미안해서.. 아무튼 알았어. 빨리 나가도록 노력할게.
휴... 이제부터 수능 날짜도 얼마 안 남았고,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지 않게 애들 정신기강도 잡아야 해서 정말 바빠질 것 같아. 이제 시작인데 미안해서 어쩌지?”
“알아요. 걱정 말고 일해요. 난 괜찮아요. 내 차도 있고, 돈도 있어 뭐가 걱정이야? 신경 쓰지 마요. 힘들면 그냥 문자 남기고 갈 테니까 걱정마요.”
민영이는 커피숍에 들어가 학원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학원 앞에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민영이는 책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하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민영이는 괜히 테이블 위에 반지를 세팅해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프로필 메인 사진이 맘에 안 들었다. 민영이는 반지 낀 손으로 커피잔을 만지고, 다이어리에 뭘 적는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커피잔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맘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사진 놀이 한 시간 만에 맘에 드는 한 장을 건져서 프로필 사진을 바꿀 수 있었다.
이번에는 비어있는 상태 메모란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상태 메모에 뭐라고 적을까 궁리했다.
뭔가 사람들이 연애 중인 것을 짐작할 만큼, 그러나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문구였으면 싶었다. 몇 개의 문장을 쓰고 지우고 한 후에 결국 한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신 입술처럼 따뜻한......]
따뜻한 이라고 할까. 달콤함 이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현욱에게는 ‘따뜻한’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단장하고 나니 마치 방청소를 하고 난 뒤의 개운함같은 것이 느껴졌다.
민영이는 괜히 기분이 좋아 친구들 계정에 들어가 ‘좋아요’ 버튼도 몇 개 눌러주었다.
전화가 왔다. 지은이었다.
“여보세요.”
“야!!! 너 너 반지 받았어? 현욱 오빠한테? 페이스북 보고 전화했어. 대박! 반지 엄청 예쁘던데? 오빠가 반지 같은 거 먼저 줄 사람이 아니다 싶어서 궁금해서 전화했어. 지난번에 너는 아직 사귀는 거 아니랬잖아.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지은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다다다다 물어봤다.
“호호호. 오빠가 정식으로 고백했어. 약혼했다고 해야 하나?”
“약혼? 집에 허락받았어? 상견례 날 잡은 거야?”
“어?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오빠가 반지 주면서 정식으로 고백했어. 같이 여행도 갔고. 지금 당장 인사 오거나 한 건 아닌데. 일단 부모님께 간단히 말했고, 곧 집에 인사 올 거야.”
“으... 응 그랬구나. 상견례해도 식장 들어가기 전까지 모르는 거니까. 여자이니 네가 입방정은 떨지 말고 천천히 연애하고 준비해.”
민영이는 지은이의 김 빠진 목소리에 괜히 기분이 상했다.
“상견례도 금방 할 거고 어차피 나이가 있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결혼 준비가 뭐 결국 쇼핑인걸 뭐.”
“쇼핑? 호호호 얘는 뭘 모르는 소리 하네. 일단 상견례부터 해보고 말해. 다들 왜 결혼이 힘드네 어럽네 하는지 알게 될 거니까. 암튼 날짜는 언제쯤 생각하고 있는데? 오빠는 언제 하재? 봄? 가을?”
“어?...... 아직 그런 이야기는 안 했는데...... 일단 어른들이 정해주시기 기다려야 하니까. 근대 생각보다 빨리 할 거야. 뭐 내년 봄에는 하겠지.”
민영이는 말하면서 순간 혼자 내가 너무 앞서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자랑스레 약혼했답시고 말했지만 사실 현욱이랑 결혼을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다.
“호호호. 귀엽다. 아무튼 축하해. 알콩달콩 연애 잘 해. 그리고 나 애 낳기 전에 보자. 나 보러 와줄 수 있지? 배불러서 멀리 못가.”
“그래.”
전화를 끊고 나니 핸드폰이 뜨끈뜨끈 했다.
민영이는 핸드백에서 새 배터리를 꺼내 교체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괜히 이것저것 뉴스들을 클릭하다가 신혼여행 광고가 눈에 보였다. 민영이는 1초 정도 생각한 후에 광고를 클릭했다.
밤 10시 현욱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커피숍.”
“계속 기다린 거야?”
“응, 할 일도 없고 헤헤. 끝났어?”
“이거 어쩌지. 나 진짜 12시까지 있어야 할 것 같아. 애들 남아서 공부하는 것도 많고 여러 일이 좀 있어서. 나 지금 잠깐 나갈 테니 딱 10분만 얼굴 보고 넌 먼저 가. 그게 좋을 거 같아.”
“알았어. 괜찮아. 나오자마자 먹을 수 있게 뭐 주문해 놓을까?”
“그럼 아무거나 샌드위치 주문해줘. 금방 나갈게.”
현욱은 금방 커피숍으로 왔다. 수염이 거칠게 나서 그런가 매우 지친 표정이었다. 민영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빨대를 꽂아 현욱에게 건네주었다.
“오빠 괜찮아?”
“응, 그냥 일이 좀 많았어. 아무래도 학생 하나 없어진 게 타격이 크다. 그래도 괜찮아. 살아갈 사람은 다 살아가니까.”
민영이가 현욱이가 먹기 좋게 샌드위치 포장을 벗겨 건네주었다. 현욱은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먹고는 우물우물 먹으면서 말했다.
“오래 기다렸는데 정말 이렇게 얼굴만 보고 가고 미안해 정말.”
“괜찮아. 오빠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제일 멋져 보여.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 같아.”
“헤헤 그래? 멋져?”
“응. 헤헤.”
둘은 테이블 위로 손을 잡으며 헤헤 웃었다. 그때 커피숍 문이 열리고 우르르 학생들이 들어왔다. 학생들이 현욱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인사해 선생님 애인이다.”
현욱이가 너무 자연스럽게 애들한테 민영이를 인사시켰다. 애들이 실실 웃으며 민영이에게 인사했다. 민영이는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학생들은 큰 소리로 까불거리며 소란을 피우는 듯했지만 금세 우르르 나갔다.
“요즘 애들 엄청 크다.”
“그치. 재들 중엔 삼수생도 있고, 덩치는 다들 어른이랑 똑같아. 그래서 관리가 어려운 것도 있고. 나도 이제 가야겠다. 감독하러 가야 해. 일어나자.”
“응.”
민영이가 주섬주섬 가방을 꾸렸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현욱이가 민영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민영이가 끼고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 낀 자신의 손을 잡은 현욱을 보며 민영이가 빙그레 웃었다. 현욱이가 무심한 듯 말했다.
“잠깐이라도 얼굴 보니 좋다.”
“고마워.”
현욱이가 민영이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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