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이는 현욱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길가에 기다리던 현욱이 차에 올라탔다.


“오랜만이야.”


민영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네. 우리 만나면서 제일 오래 못 만났던 것 같아. 정말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현욱이 생전 안 하던 애교를 부렸다. 민영은 그동안 보고 싶지도 않았던 자신이 무색하게, 현욱의 얼굴이 오늘따라 원빈처럼 잘생겨 보인다고 생각했다. 민영은 자기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씩 웃으면서 민영이가 차를 출발했다.


“어디 갈까?”


“음...... 미안한데, 괜찮으면 나 학원 매물 나온 거 몇 군데만 보고 싶은데. 괜찮아?”


민영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응, 괜찮아. 어디지?”


“노원이랑 창동, 이 두 군데를 가보고 싶어서. 좀 멀긴 한데 드라이브 삼아 가자.”


“노원? 창동? 멀리도 가네...... 그래 가자.”


민영이는 순간 주저했다. 가까운데 가볍게 둘러보고 빨리 모텔에 들어가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내내 10시 넘어서 퇴근을 했었다. 게다가 자꾸 실수를 하는 바람에 사방의 눈치까지 보여서 많이 피곤했었다. 그나마 그 한 주를 버틴 것은 주말에 현욱과 모텔에서 뒹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 벌겠다고 하는 남자친구를 도와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연인이니까. 민영이는 현욱이가 불러주는 주소를 내비에 입력했다.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조금 막혔다. 생각보다 늦게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는 길 내내 현욱은 학원 창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들뜬 모습이었다. 민영이는 열심히 듣는 척은 했지만, 초행길과 피곤함 때문에 현욱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쟁 학원과 주변 학교, 교통편과 아파트 가격 등을 꼼꼼히 보며 노트에 메모를 했다. 두 군데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오후 4시였다.


민영은 별 말하지 않고 차분히 현욱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다 끝난 것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말했다.


“이제 다 봤지? 강남으로 간다.”


“아... 혹시 괜찮으면 한 군데만 더 볼까?”


“한 군데 더?”


“피곤해?”


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욱은 민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막, 부동산 카페에 매물이 하나 올라왔는데 여기 근처네. 한 번 보고 싶어서...... 근데... 됐어. 너도 피곤한데 일단 강남으로 가자. 여긴 내일 전철 타고 오면 돼. 괜찮아. 볼만큼 봤어. 가자.”


민영이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됐어, 뭘 또 와. 온 김에 보고 싶은 거 다 봐.”


“괜찮아. 됐어. 그냥 가자.”


“아니야. 가준다고, 어디야? 주소 불러.”


“됐다고 얼굴에 피곤하다고 쓰여 있는데 신경도 쓰이고, 또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규모가 너무 작을 거 같아서 볼 필요 없을 거 같아.”


“나 거기 들렀다 갈 정도는 돼. 안 피곤해. 내일 또 왔다 갔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시간 될 때 한 번에 다 둘러보라고, 고집 피우지 말고.”


“아니야. 정말 됐어. 안 가도 돼. 니가 피곤한 것도 피곤한 거지만, 생각할수록 어차피 너무 작아서 매력이 없어.”


민영은 화가 올라왔다. 어차피 운전해주는 거 다 해줘야 생색이라도 나는 법인데, 이건 여태껏 기사 노릇 한 소용은 없어지고, 그냥 싸움닭만 남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또 싸움이 시작되는 것일까 싶은 마음에 민영이는 현욱이를 쳐다봤다.


현욱이는 뭘 하는지. 그새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민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현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민영은 내비게이션에 자택을 눌러 목적지를 설정했다.


“그런데 자본이 많이 부족한다고 하지 않았어? 가만히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큰 학원만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려고?”


“내가 알아서 해. 다 방법이 있어.”


“카드론이나 사채 쓰는 거는 아니지?”


“그럼~ 나를 뭘로 보고. 게다가 대출 신청해도 안 줘. 뭐가 있어야지. 받고 싶어도 못 받으니 걱정 마.”


현욱의 대답이 곱게 들리지 않아서 빈정거리는 거냐고 대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대로 싸움만 될 거 같아서 민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차를 강남으로 돌렸다.


서초역 부근에 다가왔을 때, 민영이가 말했다.


“오빠, 우리 배고픈데 피자랑 맥주 사서 모텔 가서 먹고 좀 쉴까?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피곤해. 한 숨 자고 싶어.”


“그래, 아무 데나 가고 싶은데 들어가.”


현욱이가 여전히 핸드폰을 쳐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민영이는 자기가 먼저 모텔 가자고 말했는데 현욱의 무덤덤한 반응에 민망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짜증이 났다. 그래도 쿨하지 못하게, 어리고 사귄 지 얼마 안 된 여자처럼 삐진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민영이는 모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현욱이 피자와 맥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민영이도 차키를 빼고 내렸다.


앞장선 현욱이 카운터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민영이는 순간 지갑을 꺼내려다 멈췄다. 현욱이가 돈이 많지는 않지만 저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있기를 바랐다. 민영이는 도로 지갑을 집어넣었다. 계산을 끝난 현욱이가 키를 들고 뒤돌아 민영에게 미소를 지었다.


809호에 키를 꽂고 불을 켰다. 현욱은 먹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정말 배고프다. 일단 좀 먹자.”


둘이 자리에 앉아 피자와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자를 한입 먹은 현욱은 바로 핸드폰을 열고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민영은 맥이 빠졌다. 둘이 얼굴 보며, 수다 떨면서, 먹고 마시고, 섹스도 자연스레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욱이 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스무 살 철없는 아이처럼 투정 부릴 수는 없었다. 민영이는 맥주를 마시고 텔레비전을 켰다.

피자 두 조각을 먹고 맥주 한 캔을 비운 민영은 현욱을 바라보았다. 현욱이는 반 조각 먹은 피자를 앞에 두고 일에 빠져있었다. 민영이는 맥주 한 캔을 새로 따서 침대에 올라갔다. 회사도 안 다니는 사람이 꼭 이럴 때 일을 해야 하나 원망이 살짝 들었다. 그리고 살짝 잠이 들었다.

민영이가 퍼뜩 눈을 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현욱은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빠 뭐해?”


“일어났어? 너 잠 깰까 봐 조용히 게임하고 있었는데.”


“일 다 했으면 나 깨우지.”


“너무 곤히 자길래. 깨울 수 없었어.”


민영이가 잠시 고민을 하고는 현욱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현욱의 머리를 자기의 가슴에 대면서 말했다.


“오빠, 모텔비 아깝게 그거 하지 말아.”


“잠깐 3초만, 이거만 하고.”


현욱은 키보드를 몇 개 누르고 나서야 만족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현욱이 민영이에게 키스했다. 민영은 할거 다 하고서야 다가오는 현욱에게 뿔이 났지만 다시 한 번 참았다.


“나 먼저 씻고 올게.” 민영이가 말했다. 그러자 현욱이가 ‘그래? 그럼 먼저 씻고 와.’ 하더니 도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민영은 순간 입술이 툭 튀어나왔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방 나왔네. 나도 금방 씻을게, 잠깐만.”


현욱이는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민영이는 가운을 벗었다. 벌거벗은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도 현욱은 민영이를 보지 않았다. 민영이는 리모컨을 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현욱이가 게임을 끝내고 샤워하러 갔다. 현욱이가 나왔다. 현욱이는 벗은 채,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닦으며 나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더니 침대로 들어왔다. 민영이는 현욱을 힐끔 보고는 다시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뭐야. 나보고 모텔비 아깝다고 하더니 텔레비전이나 보고.”


현욱이 말했다.


“나도 저거 좀 보고 하려고, 기다려.”


“나 게임해서 삐졌어? 흐흐. 고시원에 살다 보니 게임을 못하잖아. 오랜만에 해보니까 정말 재미있어서 그랬어. 미안해. 아잉. 이제 저거 끄자. 그리고 하려던 거 하자. 흐흐.”


현욱이가 느끼하게 웃으며 민영의 어깨에 키스했다. 민영이는 입을 삐죽였지만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둘은 욕조 안에 있었다. 현욱의 위에 민영이가 포개져 누워 목욕을 하고 있었다.


“정말 좋다.”


“그러게. 사랑해.”


현욱이가 민영의 정수리에 뽀뽀를 했다.


민영이의 전화 벨소리가 났다. 민영이는 욕조에서 나와 서둘러 몸을 씻고 전화를 받았다. 지은이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통화할 수 있어?”


“그럼, 웬일이야? 일요일에는 보통 시댁 가잖아.”


현욱이가 샤워기의 물을 트는 소리가 났다. 민영이는 침대에 나른하게 드러누웠다.


“그게... 시댁 갔다가 오는 길인데. 현욱 오빠 때문에 지금 좀 분위기가 안 좋아서.”


“현욱 오빠 때문에? 무슨 말이야.”


“그게... 너 못 들었어? 현욱 오빠가 창수 오빠한테 동업하자고 했어. 그래서 창수 오빠가 투자금으로 1억을 융통하려고 해.”


“뭐? 1억? 그게 무슨 소리야?”


“현욱 오빠, 학원 차리는데, 창수 오빠한테 동업 겸 투자하라고 했나 봐. 창수 오빠는 좋다고 냉큼 말했고. 그런데 사실 우리는 오빠나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거든. 그래서 오빠가 오늘 시부모님한테 대뜸 1억만 달라고 그런 거야. 나한테도 상의도 없었어. 나도 오늘 알았고.


암튼 그러자 시어머니가 차라리 1억으로 어디 놀러 가라고 더 이상은 못 믿는다고 매달 생활비랑 다 주는데 이젠 사기까지 당하려고 하냐고 노발대발하신 거야. 기본적으로 아들을 못 믿는 분들 이거든.


사실 그분들에게 1억이 큰돈은 아닌데, 그냥 태도나 그런 거에 실망하셨나 봐. 오빠는 하나뿐인 아들 안 챙긴다고 막 대들고, 난 중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같이 벼락 맞고 지금 눈치 보고 있어.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나 창수 오빠 편들어도 돼? 아니면 말려야 해? 사실 현욱 오빠는 믿는데 창수 오빠를 못 믿어서 내가 지금 고민이야. 그래서 너한테 전화한 거야.”


민영이는 놀라서 어버버 하며 아는 대로 말을 했다.


“난 하나도 몰랐어. 그냥 대출을 좀 받으려고 하는 줄 알았지. 오빠랑 이야기해볼게. 난 정말 아는 게 없어.”


“그래... 너한테 말 안 했나 보구나. 내가 괜히 너한테 말했나 봐. 난 당연히 네가 아는 줄 알았지.

그리고 1억은 사실 우리에게도 적은 돈이 아니야. 그러니 현욱 오빠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다 따져보고 결정해야 해서. 암튼 너도 모른다니 차라리 이따가 현욱 오빠하고 직접 통화하는 게 좋겠다. 괜한 전화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지은이의 말에 괜히 화가 났다. 자기만 빼고 이야기가 돌았다는 사실과 친구에게 돈을 꾸고 있다는 사실에 민영이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넌 부인이고 난 여자친구다 이거냐’라고 대꾸하고 싶었다.


“아냐. 잘 했어. 나도 알고 있어야지. 오빠한테 어떻게 흘러가는지 물어볼게. 일단 끊자. 금방 연락할게. 기다려.”


민영이는 전화를 끊었다. 얼굴이 굳었다. 갑자기 모텔 방 전화가 울렸다. 민영이는 전화가 울리도록 내버려두었다. 현욱이가 욕조에서 뛰어나와 전화를 받았다.


“네. 시간 다 됐다구요? 잠깐만요. (민영아 우리 좀 더 연장할까?)”


민영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텔에서 나온 현욱이가 민영이 차에 타며 말했다.


“집에 갈 거지? 너무 늦었으니까 난 요 앞에 내려줘. 버스 타고 갈게.”


현욱이가 차에 타자마자 말했다.


“잠깐만 우리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자.”


민영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둘은 현욱의 고시원 앞 커피숍에 들어갔다. 현욱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 우리 오늘 좋았잖아.”


“오빠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 없어.”


“솔직히 말해. 진짜 없어?”


“왜 그래?”


“지은이한테 전화 왔어. 창수 오빠한테 돈 빌려 달라고 했다면서.”


현욱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창수가 그렇게 말했대?”


“응. 아니야?”


“돈 빌려 달라고 안 했어. 투자하자고 동업하자고 했지.”


“그게 그거 아니야?”


“투자랑 빌리는 거랑 뭐가 같아. 빌려달라는 거는 쪽팔린 거고. 동업하자는 것은 좋은 기회를 나누자는 거지. 그리고 내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니야. 창수가 먼저 자기도 하고 싶다고 껴달라고 해서 그러자고 한 거뿐이야. 내가 왜 친구한테 돈을 빌려? 가진 한도 내에서 하면 되는 걸. 창수가 괜히 허세 부리면서 말해서 그렇게 전달된 거겠지.”


현욱이가 화를 참으며 말했다.


“알았어. 조용히 해. 아무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내가 그런 것 까지 말해야 해? 결정된 것도 없는데 왜?”


“그럼 이런 말 안 하면 무슨 말을 해? 결정되기 전에 말해야지. 창수 오빠랑 같이 할까 말까. 나하고 먼저 상의했어야지. 다 결정하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야?”


“내가 왜 너한테 그런 것 까지 일일이 다 말해야 하는데? 너가 사업하는 것도 아니잖아.”


민영이는 충격과 실망감에 황당해졌다.


“그럼 나한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뭐 먹을까. 어디 갈까 그런 거 말해야지.”


“그게 다야? 나하고 사업 이야기 안 할 거야? 그럼 난 뭐야? 난 아무것도 아니네.”


“왜 그래? 넌 내 여자 친구고 너랑 결혼하려고 돈 벌려고 내가 이러는 거잖아.”


“근데 나한테는 말 안 한다면서.”


“너는 자꾸 걱정만 하고, 안 될 거라고 불안해만 하잖아. 그리고 솔직히 내가 창업 관련해서 무슨 말만 하면 다 관심 없어하면서 대강 응응 거리는 거 나 다 알거든. 솔직히 너 궁금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굳이 내가 너랑 상의하고 말해야 하냐고. 그냥 좀 두고 봐. 내가 너 만족시켜줄 수 있어.”


민영이는 입을 다물었다. 현욱이가 잠시 숨으로 고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창수랑 며칠 전에 만났어. 동업 이야기하려고 말하려고 만난 거 아니고 그냥 술 한 잔 하려고 만난 거야. 그런데 내 사는 이야기 듣더니 창수가 먼저 같이 하자고 하더라. 이제 애 아빠인데, 언제까지 부모님한테 얹혀서 살 수 없지 않냐고. 안 그래도 돈 못 버는 사진관 접고, 식당을 할까 뭘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말이야.”


“근데 무슨 투자를 1억씩이나 해?”


“1억?!!”


현욱이 눈이 똥그래졌다.


“아니야. 천만 원이나 많아야도 5천만 원 정도만 하라고 했어. 그 정도는 없어도 돼. 게다가 1억이면 사실상 투자가 아니라 그냥 창수 사업이 되는데 내가 그런 걸 제안할 이유가 없잖아.”


“지은이는 1억이라고 하던데.”


“에이 씨팔. 창수 이 개새끼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현욱이는 바로 전화를 꺼냈다. 민영이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었다.


“창수야. 나야. 너 1억을 달라고 했다던데 무슨 말이야? 응? 어...... 그래 뭐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하지만 지은이가 걱정하잖아. 그럴 필요는 없어...... 알았어. 알았어. 그래 일단 지은이랑 다 같이 만나자. 내가 지은이한테 설명할게. 응, 잘 설득하고. 나도 민영이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래 알았어 끊어.”


민영이는 현욱이가 일을 벌인 것이 아니란 것에 화가 누그러졌다. 그래서 편안하게 입을 열었다.


“하여간 창수 오빠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사고뭉치라니까. 돈도 벌어보지도 못하고 사장 노릇이나 하려고 하는 한량 짓을 언제까지 하려는지 원. 지은이도 안됐어. 남편이 귀나 팔랑거리면서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다니고.”


그러자 현욱이가 화를 냈다.


“쓸데없는 짓? 귀나 팔랑? 왜? 창수가 내 사업에 관심 보이는 게 한심해? 내 사업이 그지 같아서? 그리고 1억은 안되고 몇 천은 돼? 그건 또 무슨 경우야?”


“뭐야. 오빠 왜 그래?”


“그렇잖아. 지금 창수가 나랑 사업하면 한심한 거고, 나는 1억까지는 빌리면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놈이고!”


"그냥 창수 오빠가 능력 없다고 말한 것뿐이야. 그런 사람 안목을 누가 믿겠어? 그리고 솔직히 5~6천이면 내가 갚아 줄 수 있는데 1억이면 나도 부담스러워서 그래.”


현욱이가 커피잔을 툭 내려놓았다.


“뭐? 니가 갚아? 왜 니가 갚을 생각하는데? 내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꼭 그런 건 아닌데. 잘 하겠지. 노하우도 있고, 경력도 있고. 잘 할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됐어. 넌 지금도 내가 망하면 니가 수습할 거 생각하면서 머리 굴리고 있잖아. 도대체 넌 날 얼마나 병신으로 생각하는 거야?

내가 시작은 망설였지만 내 자존심과 내 전재산 걸고 하는 거라고. 절대 안 망해. 망할 이유도 없어. 경력도 있고 노하우도 있어. 초기 자본만 있으면 일이 년이면 자리 잡을 거라고. 그런 확신이 있으니까 시작하는 거고 친구랑 같이 할 자신도 있는 거야. 그런데 그 누구도 아닌 네가 나한테 믿음이 없잖아.”


“지금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야? 당연히 오빠 믿어. 하지만 오빠도 자신 없으니까 나한테 말 안 하잖아.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지금 오빠 생각은 어떤지 한마디 안 한 게 누군데. 모르면 모른다고 타박이나 하고.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은이한테 들어서 알았어. 지은이는 알고 나는 모르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

그리고 어느 사업이 100% 성공이래. 분명 리스크는 다 있는 거잖아. 다 날려먹으면 어떡할 건데. 빌린 돈까지 날리면 어쩔 건데. 누군가는 갚아야 할 거 아냐.”


현욱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자신 있어. 너가 날 못 믿으니까 일일이 말하기 귀찮은 거야. 그리고 다 빚이 되더라도 내가 갚아. 너한테 손 안 벌려.”


“난 오빠 믿어. 단지 오빠가 나한테 말 안 하고 일만 벌이니까. 화가 나는 거야.”


민영이가 또박또박 현욱이 눈을 보고 말했다. 현욱이도 지지 않고 민영이를 쏘아보았다.


“됐다. 그만하자. 아무튼 신경 꺼. 잘 될 거야.”


“휴...... 단지 난 오빠가 공부방이나 과외나 했으면 좋겠어. 왜 위험부담을 안고 크게 시작하려는지 이해가 안가. 허황되게 하지 말고 주제에 맞게 해.”


“휴...... 넌 아버지도 사업가고 회계 장부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사업은 어느 규모로 시작하느냐가 정말 중요해. 그리고 내가 아줌마도 아니고 공부방이나 과외하려고 학원 그만둔 거 아니거든. 너랑 결혼하려고 사업 시작한 거잖아. 작더라고 원장을 해야 부모님께 인사할 수 있을 거 아냐. 나 정말 능력 있어. 좀 믿어 줘.”


민영이는 속으로 어차피 학원 강사를 하는 이상 뭘 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으나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무슨 대답이 나와서 상관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앞으로는 나랑 상의할 거야?”


“...... 봐서. 어차피 너한테 말해봤자 너 이런 식으로 부정적으로만 대하면 말하기 싫지. 암튼 그만하자. 지은이랑 창수는 내가 알아서 해.”


현욱이가 일어났다.


“늦었어. 너 내일 출근할 거니까 얼른 가. 나도 내일 이것저것 미팅 있고 바빠.”

둘은 포옹도 없이 헤어졌다.






현욱과 어색하게 해어진 다음 날, 월요일이었다. 점심시간에 지은이한테 전화가 왔다.


“민영아, 현욱 오빠 일단 만나기로는 했는데. 니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사실 여태 어린애같이 살았는데. 투자니 사업이니 부모가 된 기분으로 제대로 하려니까 너무 떨리고 머리가 아픈 거 있지. 괜찮을까? 만나도 될까? 만나서 안 한다고 해서 괜히 현욱 오빠랑 어색해지면 어쩌지?”


“난 잘 몰라. 내가 사업을 해 봤어야지. 그래도 현욱 오빠는 노하우도 있고, 성실하고, 똑똑하니까. 이야기만 들어봐. 그리고 설령 거절해도 변할 사람은 아니야. 대신 거절하려면 오히려 창수 오빠를 설득해야 하겠지.”


“넌 회계사잖아. 돈 돌아가는 거 잘 알 거 아냐. 니가 봤을 때 사업적으로 괜찮을까?”


“장부 분석이지. 회계사가 돈 버는 거, 사업하는 거  잘 알면 모든 회계사들 다 사업해서 부자 되게. 난 그냥 분석가 같은 거야.”


“에휴...... 어떡해야 하는지 고민이야. 창수 오빠 스튜디오도 그냥 장난처럼 하다가 결국 접은 거잖아...... 애기 생각하면 가만히 있음 안 되겠고. 내가 일을 한다 해도 그걸로 먹고 살지도 못하니 뭔가 장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그런데 창수 오빠 솔직히 뭘 할 사람은 아니잖아. 오빠한테 맡기지도 못하겠고...... 게다가 나 약국으로 복귀하면 아버님이 내 이름으로 약국 사업을 크게 하시려고 하거든. 그럼 나도 바빠질 거야. 그래서 오빠가 벌이는 일을 내가 조정을 못할까 봐 그게 걱정이거든.


그런 점에서 현욱 오빠는, 내 남편 감시도 하고. 체면도 세워줄 거고, 뒤통수 칠 사람은 아니니까 딱 좋긴 한데...... 투자 금액도 뭐 하려면 할 수 있는 금액이고.


휴...... 하게 된다면 정말 잘 돼야 하거든, 그래야 시부모님께 우리 부부가 인정도 받고  시누 견제도 이길 수 있고 말이야, 요새 시누가 재산 노리는 게 보여서 냅둘 수가 없어.


아무튼, 정말 돈 몇 천 때문에 오만가지 생각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근데 정말 말 좀 해줘, 니 생각은 어때? 너라면 투자할 것 같아?”


“나도 잘 몰라...... 그냥... 학원은 투자 비용이 적은 편이고, 현욱 오빠가 그래도 노하우가 있으니까. 중박만 쳐도 쏠쏠하게 남는 장사될 거 같아. 그리고 창수 오빠 생각하면 백수보다는 나을 거고 또 엄한 사업하면서 이미지 망가뜨리는 것보다 그래도 교육 사업이니까 부모님들 이미지에도 폐가 되지는 않을 거 같아서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아.”


민영이는 지은이에게 말하면서도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냥 되는대로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암튼 우리는 오늘 만날 거야. 너도 나와.”


“아냐. 나는 직접적으로 사업에 끼는 게 아니니까 가 봤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리고 오늘은 야근해야 하거든.”


민영이는 슬쩍 현욱의 사업에 발을 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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