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갈까?”
토요일 낮, 모처럼 한가한 주말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현욱이가 지내는 고시원 앞에 민영이가 차를 세웠다. 기다리던 현욱이가 조수석에 올라타며 민영이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어디 갈까?”
현욱의 첫마디에 민영이는 짜증이 났다. 3주 만의 데이트였다. 뭘 먹을지, 어디 갈지 돈은 다 못 내더라도 목적지는 대충 생각해 냈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젠 데이트할 때, 어디 갈지 생각도 안 하고 나오냐? 휴...... 됐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왜 그래? 너도 아무 생각 없으면서.”
“난 일하느라 바쁘잖아.”
“난 안 바빠? 난 노냐? 스타트업이, 창업이 얼마나 바쁜데, 당장 수입이 없다고 내가 놀고먹는 백수냐. 내가?”
“그래그래. 알았어. 백수 아니야. 암튼 뭐 먹을래?”
민영이가 현욱의 말을 자르면서 무신경하게 말했다. 현욱이는 민영이가 일부러 싸우자고 이러는 건지 싶어 화를 참으며 말했다.
“넌 지금 밥 먹자는 말이 나와?”
“그럼 밥 안 먹어? 배 안고파? 뭐 할지 모르면 일단 먹고 시작하는 거지 뭐.”
현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영이는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야. 너 진짜...... 됐어 안 먹어.”
“그래? 그럼 어디 갈 건데? 난 의견 냈어. 밥 먹자고. 오빠가 내 의견을 깠으니까 어디갈지 정해.”
“어휴......”
민영이는 계속 직진을 했다. 얼굴만 보면 짜증 나고 뭔 말만 해도 싸우자고 덤비는 나 자신이 싫었다. 또 이런 자기를 내버려두는 현욱이도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했다.
“알았어. 밥 먹자. 맥도널드나 가자.”
현욱이가 말했다. 민영이는 가까운 맥도널드로 차를 몰았다.
주말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맥도널드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욱이가 햄버거를 가져올 동안 민영이는 자리를 잡았다. 일렬로 죽 붙어 늘어선 테이블 중 가운데였다. 양쪽에 모두 사람들이 꽉꽉 채워져 있어서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참 뒤. 현욱이가 쟁반을 들고 왔다. 현욱이 앉자마자 냅킨으로 테이블을 닦았다.
“어차피 먹다 보면 또 흘릴 건데 뭐하러 닦아?”
깔끔 떠는 현욱이가 계집애처럼 느껴져서 민영이가 말했다.
“넌 드러워서 편해서 좋겠다.”
현욱이도 눈꼬리를 치켜들며 받아쳤다. 민영이도 지고 싶지 않아 한 마디 하려고 했다. 그런데 왼쪽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에게 대화 소리가 다 들린다고 생각하니 이성이 돌아왔다. 민영이는 입을 다물며 눈알을 굴려 입 조심 하자는 뜻을 현욱에게 전했다. 현욱은 민영의 눈짓을 이해하고 조용히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왼쪽에 마주 앉은 커플은 테이블 위로 아치를 만들 듯 머리를 맞대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슬쩍 보니 남자가 감자튀김을 먹여주고, 콜라를 먹여주는 등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사지가 마비된 것도 아니고, 별걸 다 먹여주네. 흥!”
민영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현욱이가 언뜻 그 말을 들었다.
“왜 그래. 보기 좋은데. 그러지 말고, 우리 다음 주에는 교외에 나갈까? 좀 춥지만 강화도나 춘천 같은 데는 바람 쐬기에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안 돼. 다음 주에 승민씨 결혼식이야.”
“그래? 같이 갈까?”
“안 돼. 아빠도 가셔. 나 집에다가는 헤어졌다고 다 말했잖아. 오빠 인사 안 오는 바람에.”
“...... 그래......”
민영이가 먹으려던 감자튀김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후...... 이게 뭐야. 남들한테는 헤어졌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말해도 믿을 만큼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연락도 못하고. 만나면 싸우고. 우리 이거 사귀는 거 맞아?”
“미안해. 학원 시작하고, 조금만 자리 잡으면 바로 인사드리고, 날 잡을게. 조금만 기다려줘.”
“지금 누가 결혼하재? 너랑 헤어지고 싶다는 거 아냐. 만나서 좋지도 않은데 무슨 결혼이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또 그런다. 자꾸 그러지 마. 말이 씨가 되는 거야.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래도 우리 사랑하잖아.”
“흥! 진심이야. 헤어지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 아니어도 나 많이 힘들어. 제발 날 좀 이해해줘. 그리고 누가 인사 안 가고 싶어? 나도 니네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지금 시기가 그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좀 들들 복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나도 미치겠다고!”
현욱이가 말하다가 흥분했는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처음 보는 현욱의 과격한 모습에 민영이는 쫄았다. 사방에서 현욱이와 민영이를 힐끔댔다.
민영이는 어깨를 움츠리며 잠바를 여몄다. 현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리며 햄버거를 우적우적 먹는 현욱의 모습이 불쌍했다. 수입도 없이, 창업한답시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민영이는 한숨을 쉬었다. 헤어지자는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말할 용기는 없었다. 현욱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또 지금 헤어지는 것이 맞는지 확신도 서지 않았고, 현욱이가 망가질까 봐 걱정도 됐고, 그리고 어쩌면 현욱이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근처를 맴돌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민영이는 투정 부리듯, 헤어지자는 말을 툭툭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런 민영에게 현욱은 짜증 섞인 화를 부리고, 둘 사이는 더더욱 차가워졌다.
현욱이는 민영이가 먹다 남긴 햄버거까지 다 먹고는 말없이 쟁반을 들고 일어났다.
다시 둘은 민영의 차에 탔다.
“커피숍? 영화? 만화방? 어디 갈래?”
민영의 질문에 현욱이가 대답했다.
“모텔 가자. 나 좀 욕조에 씻고, 텔레비전도 보고 쉬고 싶어. 고시원에만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
민영이는 모텔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모텔 대신 제안할 꺼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또 어디 갈지로 고민하고 싸우기도 귀찮았다.
“그럼 맥주 사가자. 나는 한잔 마시고 싶어.”
민영이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모텔방에서 민영이는 옷을 입은 채,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현욱이가 물을 뚝뚝 흘리며 밖으로 나왔다. 현욱이는 젖은 몸 그대로 침대에 앉았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너도 들어가 씻어.”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물 새로 받았어. 들어갔다 나와.”
현욱이가 민영이 발을 툭툭 치며 말했다.
민영이가 맥주를 들어 마셨다. 그러나 이미 비어서 몇 방울 나오지 않았다.
“어라... 다 마셨나...”
민영이가 중얼거렸다. 마침 소변도 마려웠다. 민영이는 욕실에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나니 욕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민영이는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민영이가 욕실에서 나왔다. 현욱이는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다. 현욱이가 가운을 걸친 민영이를 바라보았다. 현욱의 성기가 커졌다.
민영이는 현욱의 단단해진 성기를 슬쩍 보고는 흥! 콧방귀를 뀌며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현욱이 텔레비전을 끄더니, 민영이의 가운을 열며 가슴에 손을 댔다.
“뭐해? 누가 한대? 저리 가.”
“왜 그래? 그러지 마. 우리 할 건 해야지 안 그래?”
눈썹을 움직이며 현욱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민영이는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아래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욱이가 안다는 듯이 손을 민영이의 아래로 가져갔다.
“이것 봐. 벌써 준비됐으면서.”
현욱이가 민영이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민영이의 성기를 만지며 다른 손으로는 민영이의 다리를 살짝 벌렸다.
“어......”
민영이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했다. 현욱이가 민영이의 목덜미를 핥다가 살짝 깨물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민영이는 눈을 감았다. 민영이는 다리를 더 벌려주었다. 그리고 현욱이가 좋아하는 소리를 내며, 현욱의 귀를 만져주었다. 현욱이도 신음소리를 냈다. 현욱이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눈을 감고 신음 소리를 내던 민영이가 침대 옆의 테이블에 콘돔을 집어 들어 현욱에게 건넸다.
현욱이가 민영이 위에 늘어진 채로 말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그래서 그런지 정말 좋았어.”
“합이 딱딱 맞았지?”
“흐흐, 그러게 꼭 춤추는 거 같았어. 탱고? 아니 재즈인가? 연습 많이 한 밴드가 즉흥곡을 잘 연주하는 것처럼.”
“맞아, 우린 그만큼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현욱이가 민영이 입술에 뽀뽀를 쪽 했다.
“빼기 싫은데.”
민영이가 귀여운 척하며 말했다.
“됐어. 이미 다 쪼그라 들어서 다 빠졌어. 그리고 이러다 콘돔 터지면 큰일 나.”
현욱이가 민영이 위에서 내려와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현욱이는 민영이를 툭툭 치며 ‘먼저 씻어’라고 말했다.
민영이는 욕실로 가려고 몸을 일으켜 현욱을 내려다봤다. 현욱의 성기에 정액이 담긴 콘돔이 늘어 붙어 있었다.
‘콘돔이 터진다. 저게 내 몸에 들어오면 임신이 되는 건가? 그럼 결혼을 하는 건가?’ 임신을 해서라도 현욱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에 민영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며 욕실로 갔다.
민영이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현욱이도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갔다. 민영이는 텔레비전을 켰다.
현욱이는 빨리 몸을 씻고 나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더니 벗은 몸으로 컴퓨터 앞에 바로 앉았다.
“뭐해?”
“게임하려고.”
“지금 그걸 해야 해?”
“응, 지금 해야지 얼마만의 휴식인데.”
“게임은 나중에 피씨방 가서 하면 안 돼?”
“내가 피씨방 갈 시간이 어딨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씻자마자 그렇게 컴퓨터 앞에 가면 난 뭐가 돼?”
“그럼 뭐해? 뭐하고 싶은데?”
현욱이가 모니터에 고개를 박은 채 물었다. 현욱의 말에 뭘 하자고 할까 생각했지만 텔레비전 보는 거 외에는 딱히 제안할 게 없었다. 텔레비전 보나 게임하나 뭐 그게 그거지 싶었다.
“됐다. 게임 해. 난 맥주나 더 마시련다.”
민영이는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가 없었다. 민영이는 모텔 전화기를 들고 맥주를 주문했다.
잠시 뒤, 띵동하고 벨이 울렸다. 현욱이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민영이는 가운을 여미며 지갑을 들고나가 맥주를 받았다.
민영이는 가운을 벗고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맥주를 병째 들이켰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러나 이게 뭔가 싶은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민영은 창가로 갔다. 모텔의 창문은 두꺼운 나무 덧문으로 막혀 있었다. 민영이가 갑자기 그 덧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찬 바람이 쑥 들어왔다.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노을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저녁 하늘 아래 간판 하나가 깜빡이며 네온사인을 밝히고 있었다.
“뭐해? 닫아.”
현욱이가 놀라 일어서서 창문을 닫았다.
“왜 그래? 누가 보면 어쩌라고?”
“보면 어때. 우리가 불륜도 아닌데.”
“왜 그래?”
민영이가 현욱이를 안았다. 현욱의 맨 살에 민영이가 자신의 맨 살을 모두 밀착시켰다.
“오빠. 난 오빠 없이 살 자신이 없어. 나 흔들리지 않게 잡아줘.”
민영이가 말했다.
“왜 자꾸 그래. 미안해. 내가 잘 할게. 조금만 기다려.”
현욱이가 민영이의 등을 토닥였다. 민영이는 속으로 그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학원 준비는 어떻게 되는지, 언제 인사 올 건지. 이사는 언제 할 건지 등등이 궁금한 거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좀 더 울먹인 다음 다시 침대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현욱이도 민영이 옆에 나란히 앉아 마른안주를 집어 먹으며 민영이 눈치를 봤다.
“이제 좀 그만하자.”
현욱이가 말했다. 민영이와 현욱이는 전화통화 중이었다. 민영이 퇴근 후 전화 통화에서, 또 싸움이 난 것이다. 몇 번의 고함을 주고받은 후, 결국 현욱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만 싸우자는 현욱의 말에 민영이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흠...... 알았어. 아무튼 앞으로 나한테 말 좀 하고 일을 벌여주면 좋겠어. 주식까지 하면 어쩌자는 거야? 정말 내가 너무 불안해. 주식에 돈 그만 넣고, 아니 돈 빨리 빼.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까지 다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 이건 내 일이야. 그러니까 그만 해.”
‘내 일’이란 현욱의 말에 민영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 민영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주말에 어디서 볼까?”
현욱이가 달래주느라 민영이에게 말했다.
“이번 주에는 못 봐. 토요일에 사진 동호회 번개 있고, 일요일에는 승민씨 결혼식이야.”
민영이가 말했다.
“동호회? 하루 종일 모임이라고?...... 어쩔 수 없지. 그런데 결혼식은 다녀오면 오후에 시간 있지 않아?”
“멀리 나가서 사진 찍는 거라 하루 종일 걸려. 결혼식도 아빠 모시고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이래저래 시간도 애매하고, 피곤해서 이번 주는 못 만날 거 같아.”
“알았어...... 그럼 그날 모처럼 나도 친구 만나고 교재 연구해야겠다.”
“그래. 모처럼 좀 쉬어. 그리고 자자.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해서 피곤해.”
“그래 알았어.”
민영이는 거짓말이 들통날까 싶어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일요일에 결혼식은 사실이지만 동호회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날은 선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민영은 엄마가 보라는 선자리에 나갔었다. 엄마의 명령을 거절하며 버틸 힘이 없었다. 지은이 말대로, 창수 오빠가 했던 것처럼 차라리 들어오는 사람들 다 만나면서 느긋하게 현욱이를 기다리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게다가 현욱이와 헤어질지 안 헤어질지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토요일 아침, 민영이는 9시에 눈을 떴다. 민영이는 눈을 뜨자마자 목을 가다듬고 현욱에게 전화했다. 현욱이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 이제 동호회 사람들 만나러 나가. 모처럼 사진 찍느라 바쁠 거야. 전화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요. 집에 올 때 전화할게.”
침대 이불을 꼭 잡으며 민영이가 말했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틈날 때 연락해.”
현욱이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민영이는 전화를 끊고 안심하며 누웠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너 1시 약속이라고 안 했어?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야지.”
“아 뭐야. 노크도 안 하고. 내가 알아서 해요, 쫌 그만 쪼아요.”
민영이는 반항하듯 이불속으로 들어갔다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영이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헤어롤로 세팅을 하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는 동안 옆에서 엄마가 계속 말을 시켰다.
“오늘 만나는 사람은 변호사래. 무슨 기업 전문 변호사라는데 큰 로펌 다닌대. 기대주래. 집안도 다들 법조계에 있어서 대박이야. 나도 우리 집보다 잘난 데로 시집 좀 보내보자. 이제 너도 29살이야. 그러니까 가서 뻣뻣하게 굴지 말고 사근사근하게 잘 해봐. 공부만 하고 그래서 연애를 못해봤다는 사람이랜다. 사람은 참 순수하고 괜찮다더라. 그러니까 잘해봐. 근데 나이가 좀 많은가?”
민영이가 파운데이션을 골고루 바르며 말했다.
“근데 왜 엄마는 맨날 변호사만 데려와? 의사는 싫어?”
“집안에 의사 하나 있으면 돼지. 둘이나 있냐. 언니 보니까 생과부처럼 혼자 있고 보기 안쓰러워 의사는 싫어. 게다가 니 직업에는 변호사가 잘 맞잖아. 암튼 둘째 사위는 꼭 변호사 맞고 싶어. 내 욕심이야. 변호사 회계사 부부 멋지잖아.”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선을 봐도 안 되는 거 보면 나랑 안 맞는 거 아냐?”
“그러니까 좀 잘 맞춰보라고.”
화장을 여성스럽게 해라. 아이라이너를 무섭게 그리지 마라. 분홍색 발라라 등 엄마의 잔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화장을 끝내고는 엄마가 옷을 골라주었다. 무난한 니트 원피스였다. 민영이는 다 귀찮아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옷을 입었다. 치장을 다 하고 나도 시간이 한 참 남았다. 민영이는 머리가 망가지지 않고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허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소파에 앉아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기 시작했다.
거실에 나온 아빠가 민영이를 보았다.
“예쁘네. 오늘 선보러 나가는 거야?”
“네.”
아빠가 갑자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민영이에게 카드를 주었다.
“맘에 들면 커피 정도는 니가 사라.”
“나 돈 있어요.”
“알아. 그냥 오늘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민영이는 카드를 받았다.
“이걸로 기름도 넣어도 돼요?”
장난스럽게 민영이가 말하자 아빠도 웃으면서 말했다.
“맘에 들면 그대로 차에 기름 넣고 바로 신혼여행을 가버려. 집에 오지 말고.”
“칫. 뭐 팔아 치우는 것도 아니고. 나 아직 20대예요. 너무 떨이처럼 팔려고 하지 마세요.”
“29이나 서른이나. 정말 서른이 코앞이야. 정신 차려. 그리고 TV 조선 틀고.”
아빠가 신문을 펼치며 말했다.
“신문 볼 거면서 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래요. 나 30분 뒤에 나갈 거니까 기다리세요.”
민영이가 리모컨을 사수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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